<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박노해
가도 가도 일이 풀리지 않고
사태가 꼬여간다고 느낄때는
단 하나의 물음을 던져야 한다.
단 하나다.
아이에게 엄마는 단 하나고
시인에게 시어는 단 하나듯
나는 충분히 래디컬한가
사태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문제의 뿌리까지 파고 들어가
근원에서 파악하고 풀어가는것
그리하여 복잡하게 뒤틀린 것을
단순하게 바로잡아가는 원리
언제나 정직은 최선의 길이 아니던가
강물의 래디컬은 굽이굽이 흘러감이다.
사랑의 래디컬은 자기를 내주는 것이다.
정치의 래디컬은 기득권을 허무는 것이다.
단순성
정직성
근원성
래디컬하다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것.
언제나 근원의 진실을 거부하는 자들은
뭔가 기득권을 갖고 있는 자들뿐
나는 충분히 래디컬한가.
직업이나 빈부의 문제를 잣대로 정치적 싸움을 진행해선 안된다. 그럴 경우, 적과 동지가 고착되면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직업상 신분상승, 경제상 소득상승이라는 목표가 이뤄지거나, 이뤄지지 않을 거라고 예상되면 필연적으로 분열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직업이든, 어떤 부의 형태를 가지고 있든, 그것들이 드러내는 욕망의 방향을 살펴야 할 것이다. 직업상 신분과 경제상 소득이 문제가 될 때조차도 삶을 근원적으로 구원하는 방향으로 욕망을 구성해내지 못한다면 그 싸움은 배신당할 것이다. 비정규직이더라도 부르주아지로의 상승이나 모방만을 욕망하며 급여나 신분 투쟁에만 골몰한다면 그게 필요할 때 조차도 그 싸움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또 현상적으로 자본의 도구로 보이더라도 자신의 토대가 무너지는 쪽으로 작동되는(자신들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것들이라면 반드시 연대하거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떤 배치 속에서도 모두가 근본적으로 싸우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배치 속에서도 최선두의 ‘계급’들-제 온몸의 힘으로 극한에서 싸우는 계급-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근본적이며 최선두의 계급’은 계속 바뀌게 될 것이며, 또 바뀌어야 마땅하다. 그게 래디컬한 것, 가장 현실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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