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 1973년의 핀볼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우체통, 진공청소기, 동물원, 양념통,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쥐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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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볼에 관한 연구서<보너스 라이트>의 서문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당신이 핀볼 기계에서 얻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다. 수치로 대치된 자존심뿐이다. 하지만 잃은 건 정말 많다. 역대 대통력의 동상을 전부 세울 수 있을 만큼의 동전과(다만 당신에게 리처드 M. 닉슨의 동상을 세울 생각이 있다면 말이지만) 되찾을 길 없는 귀중한 시간이 그렇다. 당신이 핀볼 기계 앞에서 고독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은 프루스트를 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자동차 전용 극장에서 여자 친구와 <진정한 용기>를 보면서 진한 애무에 열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를 통찰하는 작가가 되고 혹은 행복한 부부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핀볼 기계는 당신을 아무 곳에도 데려가지 않는다. 재시함 볼을 켤 뿐이다. 재시합, 재시합, 재시합,...., 마치 핀볼 게임 그 자체가 어떤 영겁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영겁성에 대해서 우리는 많을 걸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그림자를 추측할 수는 있다. 핀볼의 목적은 자기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변혁에 있다. 에고의 확대가 아니라 축소에 있다. 분석이 아니라 포괄에 있다. 만일 당신이 자기 표현이나 에고의 확대, 분석을 지향한다면, 당신은 반칙 램프에 의해서 가차없는 보복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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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의무는....” 나는 칸트의 말을 인용했다. “오해에 의해서 생긴 환상을 제거하는 데 있다..... 배전반이여, 저수지의 밑바닥에 편히 잠들라.”
- 125p
#그녀는 멋있었다.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쉽...., 나만이 그녀를 이해했고, 그녀만이 나를 이해했다. 내 플레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그녀는 좋은 소리를 내면서 점수판에 제로를 여섯 개 표시하고는 내게 미소를 보냈다. 나는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는 위치로 플런저를 당기고, 반짝반짝 빛나는 은색 볼을 레인에서 필드로 튕겼다. 볼이 필드를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질 좋은 대마초를 피울 때처럼 끝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당신 탓이 아니야,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어, 열심히 노력했잖아. 아니야, 하고 나는 말했다. 왼쪽의 플리퍼, 탭 트랜스퍼, 9번 타깃. 아니라니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지. 하지만 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할 수 있었을 거야.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어,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엇 하나 끝나지 않았어. 아마 언제까지나 똑같을 거야, 하고 내가 말했다. 리턴 레인, 트랩, 킥 아웃 홀, 리바운드, 행잉, 6번 타깃......보너스 라이트. 121150, 끝났어요, 모든 것이, 라고 그녀가 말했다.
- 145~146p
#"제이, 인간은 모두 썩어가는 거예요. 그렇죠?“ ”그렇겠지“ ”썩는 데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겠죠. 그렇지만 사람마다 각자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한정되어 있는 것 같아요. 기껏해야... 두세 가지 정도지“....”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차피 썩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죠“...”그래도 사람은 계속 변하죠. 하지만 그 변화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몰랐어요“ 쥐는 테이블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어요. 어떤 진보도 또 어떤 변화도 결국은 붕괴하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말이죠. 내 생각이 틀렸나요?“ ”아니, 맞는 말이겠지“ ”그래서 나는, 그런 식으로 신이 나서 무(無)를 향해 가려는 인간들에게 일말의 애정도 호의도 가질 수가 없어요.......이 고장에도 말이죠.“
- 171p ~ 173p
#우리는 다시 한 번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건 아주 오래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안 되는 그 따스한 추억은 낡은 빛처럼 내 마음속에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사로잡아서 다시금 무의 도가니에 던져 넣을 때까지의 짧은 한때를 나는 그 빛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이제 그만 가보는 게 좋겠어, 하고 그녀가 말했다. 실제로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웠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담배를 밟아 껐다.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잘 지내, 하고 그녀는 말했다. 고마워. 안녕, 잘 있어, 하고 나도 말했다. 나는 핀볼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곳을 빠져나와서 계단을 올라가 레버 스위치를 내렸다. 마치 공기가 빠져나가듯이 핀볼의 전기가 꺼지고, 완전한 침묵과 잠이 주위를 뒤덮었다. 다시 창고를 가로질러 계단을 올라가 전등 스위치를 끄고 문을 닫을 때까지의 긴 시간 동안 나는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 199p
#잘 가. 누군가가 말했지. 천천히 걸어라, 그리고 물을 충분히 마셔라, 라고. 174
- 174p
환상이 아니라 이성이다. 아련한 과거, 미래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생성하는 현재의 아름다움이다. ‘내’가 쌍둥이와 헤어지며 최후에 깨달은 것은 1973년 핀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11월의 조용한 일요일처럼 모든 것이 되풀이된다는 것에 대한 긍정이었다. 이것은 슬픔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긍정의 아름다움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나오코가 저 같은 암흑으로 떨어졌을까? 이런 사건이 내 몸 구석구석에서도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은 무섭고 슬픈 일이다. 귀지가 귀 속 어딘가 굽은 곳을 넘어가 버리면 누가 불러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니! ‘내’가 1973년 9월부터 11월까지 찾아 나선 그 핀볼,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쉽은 그런 슬픔이 주는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 마디로 슬픔이고 죽어버린 시간이다.
그러나 하루키가 그런 슬픔과 시간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만 이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런 슬픔 만으로는 '지금'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은 45세의 중국인 주방장이 ‘쥐’에게 가르쳐 준 것과 정확히 같다. “아무리 흔하고 평범한 것에서도 인간은 노력만 하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가 없는 거지” 배운다는 것이 뭔가? 그것은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하루키는 슬픔 속에서 헤메는 길 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다시 전진하는 길을 택한다. 사실 핀볼 자체가 주저없이 볼을 다시 되돌리는 게임 아니던가. 이를테면 “어떤 진보도 또 어떤 변화도 결국은 붕괴하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예고된 붕괴를 불가피하게 품고서 앞으로 다시 나아가는 것이다. 차라리 붕괴가 불가피하다기보다, 앞으로 나아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물파던 그 사람도, 나오코도,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쉽도, 귀지도 그렇게 넘어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을 거라고 믿고 넘어가는 것이다. 오늘도 친구들에게 일러주자. 천천히 걸어라, 그리고 물을 충분히 마셔라, 라고. 출구가 입구가 되고, 입구가 출구가 되는 끝없는 길을 걸어가야 할터이니 말이다.